시각예술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심미적이면서 동시에 기능적인 특성을 지니는 공예가 타 예술 장르와 만나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영화 및 영상 언어에 비친 미술, 즉 공예다운 요소에 대해 주목했다. 영화 속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기여하는 공예품, 인형, 도자, 등의 제작 사례를 알아보고 공예를 새로운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조명해보았다.
01. 프로덕션 디자인과 공예미 02. 영상 언어에 편입된 인형오브제 03. 영화 속 일상의 발견
프로덕션 디자인과 공예미 글 | 김지은 기자
프로덕션 디자인은 무엇인가? 빈센트 로브루토(Vincent Lobrutto)는 <영화인을 위한 프로덕션 디자인 개론>(2002)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을 “시각예술로서 영화적 이야기 서술에 기여하는 기교(craft)”라고 정의한다. 감독과 제작자, 촬영감독 등과 협력하여 시각화되어 드러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예술적 완성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프로덕션 디자이너이며, 이는 그가 정의하는 말속에서 알 수 있듯이 분명히 공예품 제작 과정 속에서처럼 장인적 손길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는 더 나아가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예술감독, 세트 장식, 소품팀, 삽화가, 그리고 특히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공예가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따라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기여하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 예술가와 긴밀한 소통을 엮어 가는 진행자이며, 이 모두의 목소리를 내적으로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인물이다.
8년 째 영화 현장 연출부에 몸담고 있는 정지연은 “전체 공간 디자인에 기여하는 역할”로 이 분야를 설명하며, 현재 우리나라 영화 산업 현장에서 완전하게 정착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현장에서 미술팀으로 활동하고, 현재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프로덕션 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손민정은 “예전에는 공간과 소품 등을 책임지는 미술팀이 있었고, 의상 등을 담당하는 파트가 따로 있었다. 최근 들어 이 두 분야를 총괄하는 역할이 필요하게 되었고, 연출과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목소리를 요구하게 되어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 것 같다.” 고 설명했다.
시대상의 창조적 재현, 프로덕션 디자인 한국은 예로부터 공예품을 생활 속에서 사용했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역사극을 통해서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사극에 나타난 배경, 소품, 그리고 인물들의 의상 제작은 그 시대를 재현하기 위한 역사적 고증 작업과 아울러 현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적인 손길, 즉 공예적인 요소가 요구된다. 이 점은 최근에 개봉된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정통 사극의 요소와 현대물이 혼합된 성격을 지니는 작품으로서 ‘왕의 남자’는 전통문화와 전통공예를 토대로 한 소품과 의상 등의 영화 미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각시탈, 전통 궁중의상, 자수, 등을 직접 제작하는 수고를 비롯해 유무형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미지로 관객에게 호소해야 하는 영화 작업에도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필요하며, 공예적 손길, 즉 공예가를 요구한다. 왕의 남자에서 의상 제작, 진행을 맡았던 심현섭은 제작사 쪽에서 의뢰를 받아 전체 콘셉트를 잡고, 또 그에 발맞춰 자신만의 실험을 병행하는 영화 전문 디자이너다. 왕의 남자에서 특히 광대놀이에 사용되었던 종이로 만든 의상은 디자이너 입장에서 새로운 소재 개발의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영화에서 사극은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말하는 그는 한지를 다루면서 그 소재 자체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지는 단순히 종이의 느낌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한지의 좋은 점은 그것이 여러 가지의 느낌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에 따라서는 가죽과도 같은 느낌도 난다. 또한 채색을 하게 되면, 물을 흡수하는 종이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그 안에서 여러 가지의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질감 표현도 다채로우며, 표현 가능성이 매우 자유로운 점도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지를 주된 소재로 사용한 점은 특히 중국과 차별되는 한국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종이 의상이 그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액자극 중 주인공 광대들이 공연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경극의 요소가 들어가게 되는데, 지난 93년에 개봉한 영화 패왕별희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원단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 아류작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왕의 남자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존의 사극에서 자주 등장했던 중국적인 이미지가 아닌, 한국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이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본 공예 최근에 개봉된 또 다른 영화 ‘음란서생’도 미술이 돋보이는 영화다. 배경을 이루었던 유기전 선반에 놓인 놋그릇은 내밀하게 음란물이 생산되는 장소의 미묘한 느낌을 담는 메타포가 되었다. 조선최고의 문장가이자 사헌부 장령인 윤서가 높은 고관으로부터 글을 청탁 받는 장면에는 칠기 작품이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밖에 책가도, 목단문, 정병 등 전통공예의 손길이 역력하다.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계영배 등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소품들은 그 자체의 개성과 색감을 드러내면서 영화적 전개에 강한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전통 공예품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망막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예술이자 공예적인 기술로서 영화제작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상상력과 기술, 일상 속 리얼리티와 환상을 모두 소재로 흡입한다. 그들은 감독의 의도와 시나리오와 직접적으로 대화함으로써 작품의 시각적인 부분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은 아이디어 속에서 이미지를 끌어내며, 그 이미지 속에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결정적인 목표점을 잡아낸다. 이는 관객들에게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공예는 현실에서 전시장, 혹은 판매망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그렇지만 공예의 장인적인 손길이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관객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영상 언어에 편입된 인형오브제 글 | 김지은 기자 독일의 초현실주의 미술가 한스 벨머는 20세기 초반에 인체의 파편을 조합해 만든 인형, 기형적 인체를 제작하여 억압적 질서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던져준 바 있다. 인체의 부분을 조합해 만든 그의 작품은 영화의 특수 효과로 왕왕 사용되고 있는 구체관절인형의 시초이기도 하다. 이는 인체의 관절 부위를 둥글게 해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든 인형으로 1980년대에는 일본 전통공예가들, 혹은 아미노 카탄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작품에 응용되었다. 구체관절인형 제작은 도면작업에서 시작하여, 심재깍기, 점토 붙이기 구체 만들기, 얼굴, 손, 발 세공안구 넣기, 피부 채색, 관절 연결, 가발 붙이기, 의상 제작, 사진 촬영 등의 순서를 거친다.
구체관절인형을 비롯한 모형은 영화에서 소품으로 제작, 사용되어 극 속에 배치되기도 한다. 특수 효과를 거쳐 나타나는 이러한 모형들은 배우의 연기와는 다른 차원의 시각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인형사」, 「여고괴담」, 「주홍글씨」 등의 작품에서 사용된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미스테리 공포물 「인형사」는 깊은 숲 속에 있는 인형 미술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실제로 인형 제작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초대되는 이야기가 포함되며,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매개로 구체관절인형이 사용되었다. 닉 파크, 스티브 박스의 「웰리스와 그로밋」과 같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에는 모든 장면에서 점토 인형을 제작하여 촬영했으며, 팀 버튼 감독의 「유령신부」 역시 오랜 시간의 모형 제작을 거쳐서 완성된 작품이다.
전통극에서도 인체를 재현하는 인형제작 기법들이 사용되었고, 오랜 진화와 발전을 거쳐왔다. <전통연행예술과 인형오브제>(민속원, 2003) 에서 허용호는 ‘인형오브제’라는 말을 제시한다. 꼭두각시 놀이, 공동체굿, 가면극, 인형극, 풍물놀이 등의 전통연회 속에서 대상, 혹은 도구로 사용되는 인형오브제는“연행 속에서 창조되거나 진열되거나 조종되는 인간, 동물, 정신적인 것들의 물질적 이미지”로 정의된다. 전통극에서 사용된 인형은 그 외양뿐만 아니라, 연행방식, 역할 등도 매우 다양하다. 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간접적으로 발화되는 인간의 목소리로 기능하며, 세속적인 재미와 함께 주술적 의미, 즉 제의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이처럼 인체를 모방한 대상이 인간에 의해 사용되고, 또 인형 오브제가 움직이는 동선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그 문화적 기반을 알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영상 속에서 사용되는 인형은 점점 인간의 심리를 닮아 가는 방향으로 제작되며,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표정, 자세 등은 갈수록 세밀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수공예적 정교함을 담을 수 있는 전문적인 손길을 요구한다.
영화 속 일상의 발견 글 | 이달승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겸임교수 “나는 사람들이 비가 온다, 바람이 분다고 말하듯이 철학을 하고 싶다.” - 질 들뢰즈
프랑스 소설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예술의 본령을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진정한 예술의 위대함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 순간 깃드는 삶,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는 그 현실을 되찾아 우리에게 알려주는 데 있다.”고 프루스트는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것처럼 예술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득한 높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에게 깃드는 일상적 삶의 지평을 향하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고 매 순간 비록 우리 ‘가까이’ 깃든다 하여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그처럼 가까이 있음에도 ‘아득함’으로 남아 있는 일상의 절실함이 바로 예술의 긴장된 내용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웃음,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피로에 깃드는 일상의 절박함을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또 헤어지는가. 예술의 진정한 리얼리티가 되는 일상의 절실한 표정이 실제로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평범한 것에 눈길을 주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것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가 그러한 것처럼, 당연한 것이기 이전에 그것은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그 필요를 두고 말한다면 새롭고 특별한 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주어져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당연한 것은 결국 우리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진부한 것으로 여겨져 우리의 시선 밖으로 밀려난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평범한 것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는 우리의 타성 탓이다. 그런데 세잔이 그린 사과를 보고 나면 문득 사과가 달리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예술의 할 일이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음에도 우리가 평범하다하여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에 눈길을 되돌려주는 일에 있다할 때, 우리가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은 바로 예술의 탁월한 발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은 일상에 눈길을 주어 이른바 당위에 가려진 일상의 속내를 되찾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의 발견, 그것은 곧 예술의 과제이다.
일상의 발견, 그것은 평범한 것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치 적막 속의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다름 아닌 일상의 평범성에 대한 화가의 숭고한 존중의 결실이다. 소녀 너의 이름은 일상, 그런데 일상은 바로 우리의 오랜 누이가 아니던가. 일상의 발견은 누이와도 같이 평범한 것에 지극한 눈길을 아끼지 않는 이른바 시선의 공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잼 항아리, 자신의 아들, 생 빅뚜아르 산을 동일한 시선, 동일한 영혼으로 그려낸 세잔은 이미 더할 나위 없는 공정한 윤리의 실천가였다. 선택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 시선의 공정성에 일상은 그 풍경을 드러낸다. 공정한 화가의 시선은 구태여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찾으려 하지 않고, 주어진 일상의 발견을 그 소명으로 한다. 화가의 독창성(originality)이란 원래가 우리 눈 아래에 있음에도 아직 눈길을 얻지 못한 것에 시원(始原, origin)의 눈길을 되돌려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누가 평범한 것을 찾으려 애써 먼 길을 나서겠는가. 평범한 일상, 그것은 찾지 않고 다만 발견하는 것이다. 1953년 작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동경 이야기’는 일상의 풍경을 발견해 가는 ‘발견의 눈’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움직임에 대응한다. 일상은 과연 어디에 머무르는가. 그런데 오즈의 눈은 찾지 않는다. 일상의 발견은 이를테면 특별한 눈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즈의 눈은 어떠하여야 하는가. 찾으려하지 않기에 서둘거나 두리번거리지 않는 오즈의 눈은 기계의 면밀한 무심함에 모든 걸 맡긴 채 일상이 드러나길 인내하고 기다린다. 작가의 특정 관점이나 의도의 개입을 유보하고, 카메라 또한 인물들의 높이에 맞춘 이른바 다다미 샷으로 일상이 스스로 드러나기를 지켜볼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는 명상의 시선으로서의 오즈의 카메라는 특정기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떠한 소란과 수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고요 속의 일상의 흐름을 기록하는 카메라는 특정기법을 언급하기가 쑥스러운 듯 부동의 고요 속에 숨죽이고 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인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로만 채워진 앵글이라도 기꺼운 듯 물끄러미 섬기어 바라보는 고요 속의 관대한 시선.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요의 시선에 마침내 일상의 깊이가 마침내 묻어난다. 분주한 시선엔 요란한 것들이 저마다 앞 다투겠지만, 부동의 고요한 시선엔 대수롭지 않은 미동의 미끄러짐도 그 진동과 파장을 얻는다. 고요한 시선에 타성에 밀려난 것들이 묵묵히 응답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절제의 미학이란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에 대한 강박을 털고,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이 말하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기다림의 미학은 일상이 선택의 대상이 아님을 아는 듯 체념을 그 내면의 미덕으로 키우고 있다. 체념의 눈길에 일상은 이윽고 우리의 초상(肖像)이 드러나는 공간이 된다. 체념은 결코 단념에 불과하지 않으며 상실은 더욱 아니다. 도리어 체념이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다가오는 일상의 말없는 호소를 뿌리치지 않는 숭고한 동의의 시선을 말한다. 체념이란 나의 입장에서는 손실 혹은 상실일 수도 있으나, 너를 향한 시선이 될 때는 기꺼운 승복과 존중의 태도가 된다. 동경에서 만난 자식들의 푸념마저 가슴으로 품어 바라보는 노인의 체념의 시선은 아내의 명징한 상실 앞에서도 애상을 삼키는 먼 미소로 피어오른다. 체념은 곧 덕분이요, 따라서 고마움이다.(하이데거) 뿌리치지 않는 체념의 시선이 머무는 일상, 일상은 그 때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말, 평범한 몸짓을 통하여 우리의 얼굴이 드러나는 공간이 된다. 몽테뉴의 지적처럼 어떠한 몸짓이건 우리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몸짓이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런 일상의 몸짓일 때만 우리를 드러낸다. 사람의 온전한 발견이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경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을 마지막으로 만나고 시골로 돌아와 눈을 감은 아내의 임종을 지켜본 노인은 다시 밝아오는 아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며느리에게 체념의 말을 건넨다. “아름다운 새벽이었어, 오늘도 날씨가 덥겠구나.” 서럽도록 담담한 이 평범한 체념의 한마디에 먼 것과 가까운 것, 슬픔과 기쁨, 상실과 해후가 함께 흔들리는 일상의 풍경, 일상의 아픔이 투명하게 비친다. 노인의 말, 노인의 시선을 빌어 보여주는 오즈의 체념의 풍경은 이렇게 일상이 머금고 있는 빛나는 아픔의 노래가 된다. 슬픔과 기쁨이 대저 나눠지지 않는 아픔의 노래가. |